
[파람이 간다] 중앙대 약대를 빛낸 손의동 교수를 만나다 | 교수편
이번 파람이 간다 시리즈는 교수편으로,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홍보대사 파람은 서초구에 위치한 대한약사회관에 직접 방문하여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인 손의동 동문 인터뷰를 진행했다.
손의동 동문은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 후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의 연구원과 연구교수를 지내면서 10년간 의과대학교에 있었고, 24년간 약학대학 학과장, 연구단장, 연구소장, 학장을 역임하며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손의동 교수
아래는 손의동 교수님과 진행한 일문일답이다.
Q. 교수님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먼저 중앙대학교와 약대 학생 동문여러분 을사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터뷰하게 되어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최근 제 이름을 네이밍한 헌정홀을 개관한 것에 대해서도 학교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을미년생 1955년생으로 정년한지 4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부친의 공무원근성을 닮아서 초등·중·고등학교를 모두 개근한 성실성을 보유했습니다.
중대 약대를 졸업후 ROTC 학군장교로 임관하여 교관 및 정보장교로 활약하였습니다. 이후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의 연구원과 연구교수로서 지내며 국제적 균형감각을 보유했습니다. 또한 10년간 의과대학교, 24년간의 약학대학 학과장, 연구단장, 연구소장, 학장을 역임하면서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열심히 생활하여 연구실적을 쌓아서 한독학술대상을 보답으로 받았습니다. 더하여 대한약리학회장, FIP(세계약학연맹)서울 총회 준비대회장, 대한약학회장 역임함으로써 국제적 레벨의 학술활동과 제약산업관련 업무 파악했습니다.
현재 저는 의약학평론가회 부회장, 대학원동문회장, 약학회 자문당장, 약사회 교육발전본부장, 마약퇴치본부 이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Q. 약학대학을 졸업하시고 교수님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부산대학교에서 위산 분비 실험하여 한일합동 약리학회에서 발표를 하였는데, 발표를 인상깊게 보신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홍기환 교수님의 적극추천으로 의과대학에 첫 발을 디디게 되어 오늘날 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쌓은 연구실적으로 미국으로 유학의 길이 트여졌고, 당시 브라운 의대에서 세계적인 역류성식도염 권위자인 비안카니 교실에서 연구해서 세계소화기학회와 미국소화기학회에서 연이어 젊은과학자상을 받게되는 행운이 있어, 브라운의대에서 조교수로 발령을 받게 되었고 미국연구기술을 접목하고자 귀국하여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Q.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제가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장 보람된 점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제자를 석박사 200명가까이 배출한 것과 국제화 교실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현재 저의 제자들이 제약연구소, 학교교수, 병원, 식약처등 두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대 약대에서 제일 먼저 연변약대 출신을 받아서 외국인을 양성하였으며, 베트남, 네팔, 미얀마 박사를 배출하여 명실상부한 국제적 교실로 키웠습니다.특히 미얀마 약대에 박사 4명을 산출했을 때는 대단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후 미얀마 AA제약회사와 교류를 추진하여 기금을 지원받아 국제적인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둘째, 약학관의 착공 (2008년)이 착공되었을 때입니다.
중앙대 약대는 1953년 피난시절, 송도에서 입학식을 거행하였고 중앙대에서 이과대학인 약대가 제일 먼저 생긴 특별한 대학입니다. 1956년 파이퍼여사의 재단을 통하여 기증받아 동양 최대의 약대 건물인 파이퍼홀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파이퍼홀은 당시 50년이 지나 건물의 노쇄하여 2008년 제가 학장때 현재의 약대 건물인 11층건물을 착공해서 현재 사용까지 사용중입니다.
2008년 현재 재단인 두산그룹이 학교를 인수하여 제일 먼저 시작한 건축공사가 약학관이었습니다. 사실 학장이 되어 1년간 건축설계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여 준비해오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약대만의 강당을 만들고 교수 일인당 학생 연구실을 포함하여 미국식 연구실 시스템을 갖추게 되어 보람으로 느낍니다.
Q. 교수님의 연구분야는 무엇입니까?
A. 저는 평생 평활근 연구를 했습니다. 석사는 위산분비연구를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미국 소화기연구실에서 위 (STOMACH)의 연동운동과 식도하부괄약근의 활동을 연구하게 되어 많은 제약회사로부터 전임상연구를 실시하게 되었고, 미국브라운 대학의 연구를 접목하여 왔고 특히 동아제약, 녹십자, 일동제약, 일양약품 등과는 추가적인 적응증을 실시하여 소화기분야에 많은 업적이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국내 최대의 기술이전료를 받으면서 명문제약과 신약개발을 추진하여, 즉, 생약추출물을 위염, 역류성식도염에 적용하여 전임상시험을 독성시험을 실시하였습니다.
Q. 교수님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약학회장을 하시게 된 연유와 활동상을 말씀해주십시오.
A.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에 YMCA의 활동을 통하여 리더십을 배웠고, 약학회에 봉사활동으로 총무위원장, 재무위원장, 학술간사,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역사가 70년이 되어가는 중요한 시점, FIP(세계약학연맹)서울 총회를 준비하여 국제적인학회로 성장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제 49대 집행부로 (2015년~2016년) 2년간 회장으로 소임을 다하였으며, 영문홈페이지를 구축하여 영어발표 정례화하였습니다. 이후 대한약학회 70주년 행사를 일본, 중국, 한국 삼국의 과학자 심포지움을 개최하였고, 행사에 중국 베이징 연구자가 50명이라는 인원이 방문했습니다. 심포지움에서는 오케스트라 축하공연, 70명의 약학회를 빛낸 사람을 발굴하여 공로를 치하했습니다. 저는 영문잡지 APR을 TOP 50% 순위에 드는 세계적인 저널로 성장시켰고, 회장 선거 전자투표제를 처음 도입했습니다.
Q. 중앙대학교 대학원 동문회장으로서 학교 발전에 힘써주시고 계신데요, 동문회장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저는 제약회사 신약개발이 꿈이였고 대학원생에게 연구를 독려하여 322편의 SCI급저널에 게재하여 중대 약대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남겼다고 자평합니다. 대학교의 발전에 대한 평가는 대학원의 연구 수준에 있고, 대학원의 발전은 대학원의 우수한 연구로 작성한 논문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학금 모금운동을 독려하였고 형편이 어려운 원생도 장학금으로 해소시키며 미래도전 대학원생의 노벨상급 연구발전을 위한 1억원 이상의 모금운동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Q. 약학도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학생들에게 조언과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디지털헬스시대를 맞이하여 이에 맞는 보건의료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2022년부터 통합6년제교육이 시작이 되어서 교육과정개편과 더불어 새로운 약학선진교육의 시대가 열렸다고 봅니다. 이에 맞춰 저희는 약학전문인으로서 평생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너무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생활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운 질병의 환자에게 무료로 투약할 수 있는 투철한 희생 봉사 정신도 필요합니다.
헬스 케어 시대에 나라 살리는 길은 제약산업입니다. 제약계에 봉사하여 신약 개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제약산업은 미래의 먹거리이다. 또한 약사의 직능을 넓히는 식약처, 보건산업진흥원 등 공직약사의 길로 뻗어나가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저는 인중유화 인내를 가지고, 일겸사익 겸손하면 얻음이 많이 생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삶에 임합니다.즉 일에 대한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변화와 혁신이 있어야 소중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모교가 더 발전되도록 뒷받침하고 싶습니다.
하나,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앞으로 여러분들은 자기 꿈을 실천하는 사람이 꼭 되어야 합니다.
또한 건강의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 (happiness), 장수 (Antiaging) 즐거움 pleasure의 실천이 가능합니다.
▶파람과 손의동 교수님 단체사진
취재 / Pharam 2기 조수만 (제약학과 6학년)
Pharam 2기 홍가영 (약학과 4학년)
Pharam 2기 김지영 (약학과 4학년)